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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그 짧은 글 속에 담겨있는 깨달음을 파헤치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

by 미아앤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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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이토록 쉽고 감동적인 경전이었다니!

 

예전에 인스타그램에서 반야심경 현대어 해석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반야심경 원문에 비하면 꽤 긴(ㅎㅎ) 해석 글이지만 언제든 또 보고 싶어 질 수 있으니 여기에도 남겨 놓는걸로. 종교를 떠나서 한 번쯤 읽어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좋은 내용이니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반야심경 현대어 번역

마음이 편안해지는 존나 쩌는 방법을 알고 싶어?
누구라도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의 힌트를 줄게.
좀 더 힘을 빼고 편해지는 거야. 
고통도 괴로움도 전부 별 거 아닌 환상이니까. 안심해.
이 세상은 허무한 거야. 아픔도 슬픔도 처음부터 텅 비어있던 거야.
이 세상은 변해가는 거야.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일도 가능하지.
더러워질 때도 있고 안 좋은 일을 떠안게 될 때도 있고
그렇다면 떠안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도 가능하겠지.
이 세상이 얼마나 별게 아닌 지 알겠어? 괴로움이든 병이든 그런 거에 구애되지 마.
보이는 것에 구애되지 마. 들리는 것에 매달리지 마. 맛이나 냄새가 다양한 것처럼
사람도 다양하잖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흔들리는 마음에 구애되면 안 돼. 그게 '무'라는 녀석이지.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겠지. 괴로운 일을 겪지 않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런 것들은 거기에 놓고 가.
미래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 무리해서 비추어 보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안 보이는 그 자체를 즐기면 되잖아? 그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녀석이지.
올바르게 사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일지도 몰라. 하지만 명랑하게 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 보살로 살기 위한 노하우가 있어.
괴로워하며 살 필요 같은 건 없어.
즐겁게 사는 보살이 되는 거야.
아무런 두려움도 알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가 되지만 말이야.
적당한 공포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착각은 하지 마 무정한 사람이 되라는 소리는 아니야.
꿈이나 공상이나 자비심을 잊지 마.
그걸 할 수 있다면 열반은 어디에나 있어. 사는 방법은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아.
단지 받아들이는 방법이 변하는 것뿐이지.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이 반야를 기억해 둬. 
짤막한 말이야.
의미 같은 건 몰라도 돼. 사소한 것은 아무렴 어때?
괴로움이 작아진다면 그거면 됐잖아?
거짓말도 터무니없는 말도 다 받아들이면 괴로움도 사라지지
그런 거야. 서론은 잊어버려도 돼.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둬.
내키면 한번 읊어봐. 마음속에서 읊어도 상관없어. 알겠어? 
'읊어라. 마음은 사라지고 혼은 고요해지고 모든 것은 여기에 있고,
모든 것을 초월한 자가 될 지어니, 깨달음은 그때 얻게 되겠지.
모든 것은 이 진언으로 성취되리.'

걱정하지 마. 괜찮아.

 

이 글을 보고 나니 반야심경이 굉장히 궁금해졌다. 

그렇게 가슴 한구석에 담아놓고 지내다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

 

무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이다. 

인문학과 반야심경이 붙어있다니 이건 당장 봐야 해!

 

책은 얇은 편이어서 하루 만에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었지만, 다시 곱씹고 곱씹고 하다 보니 3일 정도 걸린 것 같다.

 

어찌나 감동했는지 리뷰를 에세이처럼 쓰게 만들었다는...!

 

그럼, 반야심경에 대해 파헤쳐보자.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

 

 

 

/ 책 리뷰



아주 오래전에 사주와 관상을 공부하는 분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마도 저녁을 먹으러 간 서촌의 레스토랑 주인분이었던 것 같다. (주인분이었는지 옆 자리 손님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내 안에 화가 많으니 종교를 가지거나 화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K-장녀라면 무릇 가슴에 응어리진 화를 품고 사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때의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현생의 무거움에 눌려 사는 탓에 그리고 종교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 때문에(이 거부감은 고등학교를 기독교 미션스쿨을 다닌 탓이 컸다.) 딱히 실천은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렇다고 화를 없앨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은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남들처럼(?) 흘러가듯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인문학이라던가 심리학이라던가 하는 것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계기는 없었다. 유튜브에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관련 책들을 읽다 보니 그런 행위를 하는 순간에는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흘러 흘러가다 보니 이 책에 다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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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처녀시절부터 성당에 다녔다. 그런 엄마를 따라 나도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때 영아 세례를 받았고, 초등학교 때까지 매주 성당을 다니며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암송했다. 하얗고 성스러운 미사포를 쓰는 것이 너무 좋았고 예쁜 세례명으로 불리는 것도 즐거웠다. (나의 세례명은 글라라였다.) 아담했지만 아름다웠던 성당도, 성체를 모시는 미사 시간도, 유쾌했던 신부님도 모두 흐릿하지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는 그렇게 영원히 종교활동을 할 줄 알았지만, 집이 말 그대로 쫄딱 망하고 다급하게 이사를 가면서 갑작스럽게 성당과 이별하게 되었다. 엄마는 더 이상 성당을 다니지 못했고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다.

 

내가 스무 살이 넘었을 무렵, 엄마는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절? 갑자기? 나는 너무나 의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의 엄마가 기댈 수 있었던 그런 종교가 아니었나 싶다. 엄마를 따라 이 산, 저 산, 절을 따라다니다 보니 나도 절이 좋아졌다. 절에 가더라도 뭔가를 특별하게 하진 않는다. 기도를 하지도 않고 스님을 만나는 것도 백팔배를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엄마는 다니는 절이 있지만) 그냥 공기 좋은 산속에 우직하게 자리하고 있는 그 고요함이 좋더라.

 

그렇게 낯설었던 불교가 조금씩 익숙해진 모양이다. 지금도 나의 종교가 불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무교이다. 그렇지만 절에 가면 화가 누그러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당에 가면 어쩐지 설레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덕분에 불교에 대해 0.1할 정도 알게 되었고, 나의 행복 제일론에 큰 도움이 되었다. (행복이 제일이다.)

 

나를 사랑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행복을 얻는 길

그것이 이 책의 전부이다.


/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행복에 관하여

/


#반야심경
#인문학을좋아하는사람들을위한반야심경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증거

 

 

 

 

 

 

/ 책 속 문장 

 

우리는 우리의 거의 모든 시간을 로봇처럼, 혹은 몽유병자처럼 자기가 아닌 것에서 오는 동력에 지배당하여 살고 있습니다.

 

나는 깨닫는데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다.

 

나는 완벽한 존재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금 여기서 그대로 받아들인다.

 

행복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얼마만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냐에 달려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신념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

 

불교는 모르는 상태(무명)에서 아는 상태(깨달음)로 옮겨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반야'란 산스크리트어로 지혜를 뜻하는 프라즈냐의 중국어 번역 본래 이름은 '반야바라밀다심경' 바라밀다=산스크리트어로 '완성' 즉, 반야바라밀다 = 지혜의 완성이며 심 = 핵심 [반야심경 = 지혜의 완성, 그 핵심을 설한 경전]

 

붓다의 중심 테마는 '행복'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으로 일관했습니다. 그가 찾았던 것은 행복의 노하우였지 철학도 학문도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불교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기적을 낳는 열쇠

 

자신에 관한 부정적인 믿음을 지워가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자신을 받아들일 때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서는 안 됩니다. 

 

구원은 최종적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달려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 반야심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 하나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 그리하여 행복을 얻는 길. 그것 하나다.

 

 

행복

- 이 세상의 모든 적의, 불만, 부정적인 감정, 곧 모든 불행한 상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데서 일어난다.

- 끝없이 이어지는 행복을 위한 목표 (어두운 상태-무명-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 무명의 상태는 괴로움의 진짜 뿌리

- 자신의 행복은 타인의 행복과 별개가 아니다.

 

괴로움 : 고집멸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1. 이것은 괴로움이다.

2. 이렇게 괴로움이 일어난다.

3. 이것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이다.

4. 이것은 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다. 

 

- 내가 바라고 있다는 착각. 바라는 것을 멈출 수 없을 때 '욕망에 사로잡힘'

- 스스로 그 행위를 멈출 수 없다면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공 空

- 세상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존재하며 그 힘에 휘둘리며 살고 있다. 이런 상태를 '공'이라고 함.

-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실체가 아니다. 

- 자신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독립된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 불교의 주제는 괴로움으로부터의 탈출입니다.

- 반야의 지혜란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 알아차리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 생각하고 상상하는 능력이야말로 우리의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최대 원인

 

희망

- '내'가 바뀌면 바깥 세계도 바뀐다.

- 인정받고 사랑받고 받아들여지고자 하는 마음에서 바깥 세계에 매달리며 그것을 얻을 수 없을 때는 화가 나는 겁니다. 불안한 겁니다. 괴로움이 일어나는 겁니다.

 

알아차림

- 여덟 가지 바른 길 

1. 정견 : 바르게 보기

2. 정사 : 바른 생각

3. 정어 : 바른 말

4. 정업 : 바른 행동

5. 정명 : 바른 생활

6. 정정진 : 바른 노력

7. 정념 : 바른 알아차림

8. 정정 : 바른 마음의 통일

- 자신을 관찰하고 머리와 마음을 쉬는 연습

- 우리는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일로 평생 남을 원망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을 걱정하면서 괴로움에 빠져 삽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려면 철저히 '지금, 여기'를 알아차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 화가 날 때 마음의 움직임을 잘 지켜보는 겁니다.

- 바깥 세계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 멈추어 냉정하게 바라볼 때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다.

 

받아들임 :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

- 우리는 스스로에게 집착하고 있다. 집착이란 자신의 요구에 꼼짝 못 하고 붙들려있는 것입니다. 요구가 채워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붙들려 있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요구를 버리면 그 자리에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행복해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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